Just as Moses lifted up the serpent in the desert,
so must the Son of Man be lifted up,
so that everyone who believes in him may have eternal life.
so must the Son of Man be lifted up,
so that everyone who believes in him may have eternal life.
(Jn.3.14-15)
십인 십색의 행복
(사랑이 숨어 있는 사막중에서)
인디언 추장이 나이가 들어 인디언 추장을 물색하기 시작했습니다. 추장은 부족들 중에서 가장 용감하고 덕망이 높은 세명의 용사를 불렀지요
"저 산꼭대기에 올라 가서 표적이 될만한 것을 하나씩 가져오너라.그러면 너희들중 한 사람에게 추장 자리를 물려 주겠다."
용사들은 전력을 다해 정상에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그기로는 산꼭대기에 중요한 물건들을 찾아서 다시 내려왔습니다
첫번째 용사는 아름다운 꽃을 추장에게 바쳤습니다. 두번째 용사는 기암괴석을 표적으로 제시했지요. 그러나 추장은 아무런 말이 없었어요. 마지막으로 세변째 용사는 빈손으로 내려와 추장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추장님, 산꼭대기에 올라보니 건너편에 넓고 기름진 평야가 펼쳐져 있었습니다. 그곳으로 부족의 거처를 옮기면 지금보다 훨씬 윤택한 삶을 살수 있을것입니다."
추장은 세번째 용사에게 추장 자리를 물려 주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 두사람은 자신의 명예만 바라보며 산에 올랐으나 이 용사는 우리의 미래와 행복을 생각했다."
많은 사람들이 '우리'보다는 '나'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하나의 우리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우리를 만들때가 더 많습니다. 그러니 자연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에는 상처와 아픔을 체험하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이 상태에서 사람들은 행복해지지 않습니다. 이런 모습을 보고 있던 하느님은 그 해법을 바로 ''나'만을 생각하는 이기적인 욕심으로부터의 탈출이라고 보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에서 이러한 기도를 하셨습니다
"그들이 모두 하나가 되게 해 주십시오."(요한 17,21)
그렇지만 '십인 십색'이라는 말도 있듯이, 사람은 사람마다 다 제각각이어서 도무지 누구와 하나가 되어 산다는 것이 어렵기만 합니다. 심지어 일심동체라는 부부관계에서도 그렇고, 피와 살을 나눈 부모와 자식, 형제간에도 그렇지요. 물론 저마다 일치된 가운데 평화롭게 살고 싶어 하지만 살다보면 오히려 가장 가까운 사람들과는 하나 되기가 더 어렵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아마 상대방에 대한 기대와 욕심이 높고, 자신의 기준으로 상대방을 재려 들기 때문일 것입니다. 내가 옳고 남은 그르다는 생각도 여기에 한몫을 하겠지요 진정으로 하나가 되려면 저마다 상대방이 가지고 있는 다양성과 처지를 있는 그대로 이해해줘야 합니다. 사람은 다 제 잘난맛에 산다고 하지요 그것을 인정해 주어야 그 사람도 마음이 열리고 다른 사람의 잘난 멋을 인정할수 있습니다
그래야 하느님께서 원하시고, 그렇게 되기를 바라면서 바쳤던 기도의 내용처럼 서로 하나를 이룰수 있지 않을까요?
오늘의 한마디
우리 모두가 하나 되기를 기도합니다
Tom Barabas & Dean Evenson - High Fly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