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게으름뱅이야, 개미에게 가서 그 사는 모습을 보고 지혜로워져라.”(잠언 6,6)
부지런하게 살아야 한다는 가르침을 가장 작은 곤충인 개미를 통해서 배우라는 것이지요.
그런데 잠언의 저자의 눈이 참으로 대단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떻게 보면 하찮게 볼 수 있는 힘이 없는 곤충인 개미,
그 개미를 계속해서 관찰하면서 개미에게도 배울 것이 있음을 발견했던 것이지요.
어제 하루를 생각해보세요. 얼마나 많은 것을 보았으며,
또한 얼마나 많은 소리를 들었습니까? 또 내가 만진 것들은 얼마나 많습니까?
아마 내가 맡은 냄새도 만만치 않게 많을 것입니다.
그리고 안 먹고 살 수 없을 테니 또 입으로도 많은 것들이 들어가서 나의 혀를 즐겁게 해주었겠지요.
이렇게 수많은 것들이 나를 스쳐 지나갔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많은 것들을 통해서 우리는 무엇을 느끼고 생각했는지요?
조각가 로댕은 청년들과 산에 갔다가 길을 가로막고 있는 바위를 만났습니다.
청년들은 이 바위를 귀찮은 눈길로 바라보았지요.
그러나 로댕은 이 바위에서 인생을 고민하는 젊은이를 발견했고,
그래서 그 유명한 ‘생각하는 사람’을 만들었습니다.
보통 사람들은 물이 끓는 주전자를 무관심하게 바라봅니다.
그러나 와트는 거기에서 증기기관차를 보았습니다.
사람들은 번개가 치면 깜짝 놀라고 무서워 몸을 떱니다.
그러나 프랭클린은 그곳에서 어둠을 밝힐 전기를 보았습니다.
사람들은 쥐를 징그럽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정리 해고를 당해서 창고에서 생활할 수밖에 없었던
월트 디즈니는 쥐를 보면서 평화와 자유의 상징인 미키마우스를 만들었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무심코 넘기는 곳에 대단한 것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 안에도 하느님의 손길이 작용하고 있으니까요.
이는 하느님의 법, 계명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쯤이야’ 하는 생각들, ‘남들도 다 그렇게 하는데’ 라는
안일한 마음들이 하느님을 나의 생활에서 느끼지 못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힘주어서 말씀하십니다.
“이 계명들 가운데에서 가장 작은 것 하나라도 지키고 가르치는 자는 하늘나라에서 큰사람이라고 불릴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사랑의 계명은 별 것 아닌 아주 작은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작다고 하는 세세한 계명까지 다 지키고 가르쳐야 하느님과 함께 할 수 있음을 잊지 마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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