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산책

구두 닦는 철학자

민트로사 2009. 1. 25. 07:07

 

 

구두 닦는 철학자(유린, ‘서른한 개의 선물’ 중에서)


 

이제 막 서른을 넘긴 종식이 구두 밑창을 갈기 위해 구둣방에 들렀다.

“아저씨, 구두 밑창 갈려고 하는데요. 얼마나 걸리죠?”

“37분쯤 걸리니 7시 50분이면 끝나겠네요.”

구두를 고치는 아저씨의 모습을 지켜보니 신기했다. 우선 모든 기계를 자기 몸에 맞춰 개조해서 쓰고 있었다. 회전 숫돌은 왼발 앞, 쇠 받침대는 오른발 앞 페달을 밟으면 나왔다. 머리 위 끈을 잡아당기면 사포나 접착제가 담긴 통과 펜치가 내려왔다.

“아저씨, 어떻게 이런 걸 만들 생각을 하셨어요?”

“일을 하다 보니 아이디어가 생겼지요. 내 몸에 맞게 고치는 게 재미도 있고요. 이것도 발명이죠. 알아주지 않지만 그게 중요한가요?” 내가 즐겁고 편하면 되지.“

공부를 많이 한 것 같진 않았지만, 아저씨의 말속엔 뭔가 철학적인 의미가 담긴 듯 했다. 그는 클래식 음악을 들으며 흥얼거리고 머리를 지휘자처럼 흔들기도 했다.

“클래식 좋아하세요?”

“클래식은 가사가 없어서 좋아요. 곡만 음미할 수 있잖아요. 근데 직장 다니고 있나?” 어느덧 아저씨는 동생에게 대하듯 말을 놓았다.

“네. 작은 여행사에서 일하는데, 죽지 못해 다녀요.”

“죽는 것과 바꿀 정도로 선택했으면 열심히 다녀야지. 열심히 일하지 않는 사람들은 늘 이렇게 말하곤 해. 지금은 이래도 좋은 직장을 구하거나 자기 사업을 시작하면 열심히 할 거라고. 그런데 그게 그렇게 되나.”

“그래도 직장을 옮기고 싶어요.”

“내일 옮기더라도 오늘은 그런 생각을 하면 안 돼.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느끼거든. 자네를 보면서 ‘곧 그만둘 놈’이라고 생각할거야. 동료든 상사든 거래처 직원이든 언젠가 다 자네의 증인이 될 사람들이야. 그러니 마음 고쳐먹어.”

“그게 잘 안 돼요.”

“소풍 가는 것처럼 기분 좋게 일해. 쥐꼬리만 한 월급이라는 생각은 버리고, 조금 더 받는다고 팔자 고치는 것도 아니잖아. 기껏 나아 봐야 소형차와 중형차 차이겠지.”

아저씨는 어느새 수선한 구두를 내밀었다. 시계를 보니 정확히 7시 50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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