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9보다 빠른 이웃 (서정홍, ‘부끄럽지 않은 밥상’ 중에서)
산골 마을에서는 이웃보다 소중한 사람이 없습니다. 팽기 할아버지 집 아궁이
경운기가 논두렁에 처박히면 자기 일처럼 끌어 올려 주는 사람도, 먹는 물이
옆에 쌓아 놓은 장작더미에 불이 났을 때 얼른 달려가 불을 끈 사람도, 갑자기
가을비 내릴 때 길 위에 여기저기 널어 놓은 나락을 함께 덮은 사람도, 혼자 사
는 인동 할머니가 살아 계신지 틈만 나면 들여다보는 사람도, 사슴 농장 아주
머니가 화상 입었을 때 아침마다 보건소에 모시고 간 사람도, 설매실 어르신이
경운기 사고로 피흘리며 쓰러졌을 때 병원에 모시고 간 사람도, 새터 할머니가
날이 갈수록 정신이 없어 가스레인지 불을 켜 놓고 산밭으로 나갔을 때 그 불
을 끈 사람도 모두 가까운 이웃입니다.
경운기가 논두렁에 처박히면 자기 일처럼 끌어 올려 주는 사람도, 먹는 물이
나오지 않으면 연장을 들고 물탱크로 달려가는 사람도, 밤새 눈이 내리면 아
침 일찍 일어나 마을 길에 쌓인 눈을 치우는 사람도, 이웃집 자녀가 혼인하면
며칠 내내 음식 준비를 같이 하는 사람도, 산밭에 일손이 필요할 때 아무 조건
없이 달려와 주는 사람도, 농산물 값이 폭락해 마음 둘 곳 없을 때 그 설움을
달래며 막걸리 한잔 나눌 수 있는 사람도, 발을 헛디뎌 다리가 부러졌을 때
가장 빨리 달려와 주는 사람도 모두 가까운 이웃입니다. 피붙이가 아무리
소중하다 해도 이웃만큼 소중하지는 않습니다. 119구조대가 아무리 빠르다
해도 이웃만큼 빠르지 않습니다. 더구나 산골 마을에서는 이웃이 없으면 살
수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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