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꽂이

책상은 책상이다 (페터 빅셀) 2010.5.21

민트로사 2010. 5. 23. 17:54

 

 

책상은 책상이다

 

책상은 책상이다

페터 빅셀  지음

이용숙  옮김

예담  출간

 

 

기발한 상상력과 따스한 유머가 있는 페터 빅셀의 일곱 가지 이야기
1960년대 말에 이 책을 쓰면서 빅셀은 기존 언어와 사유 체계의 전복을 시도하면서 산업화에 따른 인간 소외와 의사 소통의 부재를 이야기했다. 이 책에 실린 일곱 편의 이야기에는 평범한 삶에 실패한, 별나고 우스꽝스럽지만 서글픈 세상의 아웃사이더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알고는 있지만 믿지 못하는, 그래서 정말 둥근지 확인해 보려고 길을 떠나는 남자, 기존 언어 체계에 답답함을 느껴 사물의 이름을 바꿔 부르다 결국에는 다른 사람과 의사 소통을 할 수 없게 되어버리는 사람, 그리고 아메리카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는 남자가 있는가 하면, 수십 년 동안 세상을 등지고 혼자 발명에 전념하다가 천신만고 끝에 발명해 낸 물건이 이미 세상에 다 보급되어 있는 텔레비전임을 알게 된 발명가…….

주인공들은 이미 완결된 체계에 대한 '회의'와 '부정'에서 출발한다. 지구는 둥글다, 책상은 책상이다 등. 너무 당연하여 그렇지 않으리라고는 감히 생각도 못할 불변의 진리에 대해 그들은 의심한다. 지구는 정말 둥글까? 책상은 책상으로 불려야만 할까?

별난 주인공들은 이러한 회의와 부정으로 기존의 사유와 언어를 뒤집어엎고, 그것을 통해 기성 체제의 권위와 권력에 도전한다.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 여행을 떠나고, 책상을 양탄자라고 부르고, 아메리카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끝까지 믿는 반항아들. 그러나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확인하러 간 남자는 아직 돌아오지 않고, 책상을 양탄자라 부르던 남자는 절망적인 실어증에 빠지고 만다.

아메리카는 없다고 믿는 남자는 끝끝내 그곳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는다. 결국 이 책은 이들이 소외되고 고립되는 서글픈 이야기일 수밖에 없다. 작가는, 세상의 기준에 맞춰 안락하게 살아가는 삶을 거부하고 자신이 믿는 진실을 끝까지 추구하는 이 아웃사이더들을 따뜻하게 바라보며 진심으로 격려하고 있다.

그로부터 30년 이상이 지난 현재 우리는 디지털 시대에 살고 있다. 온종일 휴대폰으로 메시지를 교환하고 인터넷으로 이메일을 보낼 수 있어 '고립'이라는 단어 자체가 사라져야 할 것처럼 보이는 시대다. 하지만 현대인은 자유로운 사고 활동에 더욱 제약을 받고 상호간 의사 소통의 통로는 점점 단절되고 있으며,

그럼으로써 더욱 소외감과 고독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지는 않지만 따스하면서도 긴장감 있고 유머러스한 문체로 우리를 색다른 사색으로 유혹하는 이 책은, 현재 우리가 직면한 '새로운 고립'을 되짚어볼 좋은 계기가 될 것이다.

 

본문 중에서
그는 계속 앞으로 나아가면 몇 날, 몇 주, 몇 달, 몇 해가 지난 뒤에는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지금 그가 책상 앞에서 일어나 길을 떠나기만 한다면 훗날 책상의 반대쪽으로 다시 돌아올 수가 있을 것이다. 그건 사실이다. 그리고 누구나 그 사실을 알고 있다.

"계속 똑바로 나아가면 이 책상이 있는 곳으로 다시 돌아올 거라는 걸 나는 알지." 남자가 말했다. "그걸 알긴

 

하지만 믿을 수는 없어. 그러니까 진짜 그런지 한번 시험해 봐야겠어." "똑바로 걸어가보는 거야." 이제 아무것도 더 할 일이 없는 그 남자는 얼마든지 똑바로 걸어가볼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그 남자를 다시는 보지 못했다. 그게 십 년 전 일이고 그때 그는 여든 살이었다. 이제 그는 아흔 살이 되었을 것이다. 아마 중국에 다다르기 전에 그 사실을 깨닫고 여행을 그만두었을 것이다. 어쩌면 죽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따금 나는 대문 밖으로 나가 서쪽을 바라본다. 그리고 그가 어느 날엔가 지쳐 느릿하게, 그러나 웃음을 띠며 숲에서 걸어나오는 것을 본다면, 그리고 내게 다가와서 이렇게 말해 준다면 나는 정말 기쁠 것이다.
"이젠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을 믿게 되었다네."
- 지구는 둥글다 중에서

"언제나 똑같은 책상, 언제나 똑같은 의자들, 똑같은 침대, 똑같은 사진이야. 그리고 나는 책상을 책상이라고 부르고 사진을 사진이라고 하고, 침대를 침대라고 부르지. 또 의자는 의자라고 한단 말이야. 도대체 왜 그렇게 불러야 하는 거지?"… "이제 달라질 거야." 이렇게 외치면서 그는 이제부터 침대를 '시진'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피곤하군, 사진 속으로 들어가야겠어." 그는 이렇게 말했다. 그러고는 아침마다 한참씩 사진 속에 누운 채로 이제부터 의자를 뭐라고 부를까를 고심했다. 그러다가 의자를 '시계'라고 부르기로 했다. 그러니까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옷을 입고, 시계 위에 앉아 양팔을 양탄자 위에 괴고 있었다.
- 책상은 책상이다 중에서

 

세상 구석구석을 연결하는 인터넷의 축복으로 인해 '소통의 부재' 나 '고립' 이라는

단어 자체가 사라져야 할 것처럼 보이는 시대다.

온종일 휴대폰으로 메시지를 교환하고 이메일을 보내도, 사람들은 오히려 과거보다

더욱 언어 소통에 어려움을 느끼며 이웃간의 벽, 계층간의 새로운 장벽 때문에 절망한다.

그래서 지하철이나 거리에서 혼자말을 하는 사람이 점점 늘어가고, 그 오랜 세월을

뛰어넘어 빅셀이 다시 우리 마음에 다가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인간 소외와 의사 소통의 부재를 이야기함.

편집증 환자로 보일 수도 있는 특이한 나이가 많은 남자 주인공들의 이야기.

작가는 세상의 기준에 맞춰 안락하게 살아가는 삶을 거부하고

자신이 믿는 진실을 끝까지 추구하는 이 아웃사이더들에게 진심으로

격려를 보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