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년 성(城)안이 온통 초록이다. 1.8㎞ 성곽이 둥그렇게 에워싼 20만㎡, 6만평이 사방 탁 트인 잔디밭이다. 성벽 안쪽에도 비스듬히 흙 쌓고 떼 입혀 담조차 푸르다. 그 발치를 빙 둘러 유채꽃·영산홍·영산자가 노랗고 빨갛고 파랗게 피었다. 잔디에 드문드문 선 거목들도 신록으로 갈아입었다. 단풍나무는 겨우내 칭칭 감고 있던 방한(防寒) 붕대도 풀지 않은 채 진녹색 잎을 가득 매달았다. 늦은 4월 서산 해미읍성은 초여름 같다.
▶눈부신 초록 속에 딱 한 그루, 여태 새잎 하나 피우지 않은 나무가 있다. 남문 들어서 북쪽 동헌까지 잔디밭을 질러가는 길 오른쪽에 기우뚱하게 선 300살 회화나무다. 해미읍성에서 제일 키 큰 18m 나무가 고사목처럼 시커멓다. 외과수술을 두 차례나 받아 몸뚱이 절반을 시멘트로 채웠다. 회화나무는 고매한 선비 같다 해서 조상들이 선비나무, 학자수(樹)로 대접했다. 그 상서로운 나무가 해미읍성에선 모질디 모진 일을 당해야 했다.
▶회화나무 곁에 해미영(營) 관아의 감옥이 있었다. 1797년 정사박해부터 1801년 신유박해 거쳐 1866년 병인박해까지 서산 일대 천주교인들이 끌려와 갇혔다. 형리(刑吏)들은 회화나무 가지에 철사줄로 신자들 머리채를 매달아 고문했다. 믿음을 버리라고 닦달했다. 배교(背敎)를 거부한 신자들에겐 회화나무가 교수대였다. 철사줄 흔적이 파여 있던 동쪽 가지는 70년 전 부러져 옹이만 남았다.
▶감옥이 넘치자 형리들은 서문 밖 해미천에 웅덩이 파고 신자들을 생매장했다. 오랏줄로 묶어 돌다리에 타작하듯 패대기쳤다. 그렇게 져 간 신자가 병인박해에만 1000명을 넘었다. 그중 이름도 못 남긴 이가 900명 가깝다. 회화나무는 그 끔찍한 비극을 지켜봤다. 제 몸에 매달려 순교자들이 내지르는 비명을 들었다. 나무인들 피바람에 무심했을까. 회화나무는 유난히 일찍 온 봄이 다 가도록 한 잎도 내밀지 못하고 있다.
▶초가 주막, 휘장 친 평상에 걸터앉아 국밥에 막걸리 한 잔 곁들였다. 널따란 잔디밭을 네댓 살 아이들이 까르르 웃으며 이리저리 뛰어다닌다. 휠체어 타고 나온 할머니들이 아이들의 싱그러운 봄을 보며 야단이 났다. "아이고 이뻐라…." 한숨 섞인 감탄이 연방 터진다. 그 소리가 탄식처럼 들린다. 잿빛 회화나무도 해미읍성에 찬란한 생명들을 내려다본다. 이 기구한 나무에 8월 17일 프란치스코 교황이 찾아온다. 그때쯤이면 회화나무도 짙은 녹음(綠陰)을 이고서 순교자들과 함께 비로소 큰 위로를 얻을 것이다.
[조선일보,2014.4.28]
두 해 전 사순기간에 나름 몇 군데 성지순례를 다녔었다.
그 중에 해미성당도 있었는데 저 회화나무가 있다는 해미읍성은 돌아보질 못했다, 아쉽게도.
오늘아침 신문을 보다가 저 회화나무의 기사를 읽고는
너무도 마음이 아팠다...
순교자들의 비명을 들어야했던 저 회화나무를 만나고 싶다. 기회가 된다면.
고개 숙여 인사도 하고 싶고 꼭 안아도 보고 싶다.
비극을 지켜봐야 했던 회화나무가 비록 나무이지만 눈물을 흘리지 않았을까...
300살이나 되었다는 저 회화나무... 숭고한 역사적의미의 어르신인것 같다...
이땅의 순교자들과 함께.
minro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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